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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을 프레즐 매장에 데려다 준 준후는 방재실로 돌아가 상황을 보고 오겠다며 가버리고, 세은은 매장 창고에 힘없이 앉아있었다.

“사장님은 경찰들이 불러서 방재실에 가셨어. 우리 매장 CCTV 때문인가 봐. 근데 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어제 생각을 좀 해봤는데, 그동안 내가 너한테 좀 너무 하긴 했더라. 파란 머리 친구 말이 맞아. 미안.”

풀이 죽어 앉아 있는 세은이 신경 쓰였던 예랑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좀 쉬어. 내가 일 다 할게. 알았지?”

예랑의 말에 아소가 떠오른 세은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소를 이렇게 두고 온 게 잘한 행동일까?

 

만약, 아소가 누명을 쓰게 되면 어쩌지?

 

아소가 행성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야, 안세은. 설마 우냐? 뭐 울기까지 하고 그러냐? 그동안 그렇게 힘들었음 진작에 말을 하지. 얘는 진짜. 사람 미안하게 만드네.”

삐죽대는 예랑의 말을 들으며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세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랑아, 나 아무래도 가봐야겠어. 오늘은 네가 일 좀 해줘. 부탁해.”

“뭐? 야, 그렇다고 이렇게 가버리기 있어? 이제 바빠질 시간인데!”

후다닥 달려나가는 세은의 뒤통수에 대고 예랑이 소리쳤다.

다급하게 14번 승강장으로 달려간 세은이 두리번거렸지만 아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소, 아소.”

애타게 부르는 세은의 목소리가 역사에 울려 퍼졌다.

.

.

.

14번 승강장 근처 어디에도 아소는 없었다.

불안해진 세은은 마음속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아소가 시끄럽다고 할 만큼 큰 소리로 생각해야 해.

 

어떤 음악을 생각하지?

 

그래, 아소. 아소에 대해 생각하자.

 

제목은… 그러니까…

 

[하늘 빛 아소.]

세은은 마음속으로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서울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1번 승강장에도, 화장실에도, 편의점에도, 아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넓은 서울역을 하염없이 헤매던 세은의 발걸음이 옥상에까지 이어졌다.

옥상정원을 휙 돌아보던 세은의 눈에 노란 꽃이 보였다.

기다란 꽃잎이 하늘거리는 독특한 모양의 꽃.

금매화?

그 순간, 어젯밤 세은의 집 테라스에서 아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행성 우리 집에는 금매화가 많아.”

 

“금매화? 처음 들어보는 꽃인데.”

 

“노랗고 기다란 꽃잎이 하늘거리는 꽃이야. 꿈 많은 소녀라는 꽃말을 가진 예쁜 꽃이지.”

 

“나도 한번 보고 싶다. 지구에도 있어?”

 

“응, 지구에도 있는 꽃이라고 들었어. 다음에 오게 되면 세은이 너한테 선물해 줄게. 너랑 잘 어울리는 꽃이야. 꿈 많은 소녀.”

 

“내가 꿈이 많다고?”

 

“응, 네가 만드는 음악을 들으면 알 수 있어. 얼마나 멋진 꿈을 꾸는지.”

 

“그런가?…”

어젯밤의 대화를 생각하며 세은이 꽃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꽃 주변 흙에서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한 세은이 흙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가장 위에 있던 흙을 옆으로 옮기자 반짝이는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계.

죽기 전, 커피를 사러 왔던 블루가 차고 있던 시계였다.

초침도 움직이지 않던 시계에 세은의 손이 닿자 파란 무브먼트가 째깍거리며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계를 손에 꼭 쥔 세은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소가 들을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더 크게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있는 힘껏 달렸다.

14번 승강장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세은의 눈에 아소가 보였다.

“아소.”

세은은 숨이 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세은,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숨이 차 있어?”

“너, 너. 내가 부르는 소리 못 들었어?”

“네가 흥얼거린 그 아름다운 멜로디 말이지? 난 네가 기분이 좋구나 하고 생각했어.”

“널 부른 거였어.”

세은의 말에 아소가 기쁜 미소를 지었다.

“혹시 블루의 시계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역 안을 둘러보고 있었어. 그럼 블루 대신 아티스파우스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

세은이 시계를 내밀었다.

“이걸 세은이 네가 어떻게.”

“아소, 이게 있으면 행성에 돌아갈 수 있고, 죽은 블루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했지?”

세은의 질문에 아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른 가. 아소. 그런데 블루는 어떻게 데리고 갈 거야?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블루는 같이 가지 않아도 괜찮아. 지구에서 죽은 행성인 몸은 행성으로 소환되거든. 그런데 지금은 소환해 줄 크라운이 없으니까…. 아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블루는 행성으로 돌아올 거야.”

“여전히 행성에 대해 이해는 잘되지 않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 아소.”

“고마워, 세은. 갔다가 블루랑 함께 올게. 우리 다시 만나자. 내가 다시 오면 그땐 세은이 네 티켓이 어떤 건지 알려 줄게.”

아소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소, 미안해. 나 사실, 널 의심했었어.”

세은의 말에 아소는 다른 대답을 했다.

“꿈 많은 소녀야, 날 생각하며 만들었던 멜로디, 다시 들려줄 수 있어?”

14번 선로에 선 아소가 소리쳤다.

눈을 꼭 감은 세은이 이번에는 소리 내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5, 4, 3, 2, 1

*

“범인이 잡혔다는구나. 준후한테 매일 실없는 얘기를 하던 노숙자가 범인이 확실하단다. ”

사장이 매장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진짜요? 어머, 무서워. 그 노숙자 아저씨 사람 죽일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저번에 커피 잘못 내린 거 준 적도 있다고요. 으~ 소름.”

예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글쎄, 죽은 남자가 11시쯤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고, 2시쯤 또 화장실에 갔었더라고. 그때 그 노숙자가 따라 들어가더니 15분쯤 있다가 옷에 피를 잔뜩 묻히고 나오지 뭐냐. 그게 우리 매장 CCTV에 고스란히 찍혀 있더라니까. 세은이 친구도 찍혔던데 죽은 남자랑 엇갈려서 나가더라고.”

“어머머, 그럼 우리 매장 경찰에 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장의 말에 예랑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상은 무슨, 우리가 서울역 일등 매장인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 허허. 근데 세은이는 어디 갔니?”

“아, 말도 마세요. 사장님. 저 안세은 없어서 바빠 죽는 줄 알았잖아요. 어, 저기 오네요.”

홀가분한 얼굴의 세은이 매장으로 들어왔다.

“세은이 파란 머리 친구는 어디 갔니?”

“갔어요. 집으로.”

“갔다고? 나 걔한테 머리 어디서 했는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예랑의 말에 세은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시 올 거야. 아소는.”

2 Comments

  • 하람 says:

    어째서 이게 마지막화예요ㅠㅠ 글 읽는 거 정말 오랜만인데 재밌게 잘 읽었어요 연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Cassandra says:

    i’ll wait for the nexxxtt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