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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3, 2, 1.

14번 승강장 앞, 세은의 꼭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눈을 감은 세은은 그냥 이대로 아소가 아티스파우스를 타고 행성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기도했다.

아소를 처음 만날 날 보았던 꿈 같았던 15번 승강장의 모습도, 거짓말 같은 아소의 말과 행동도 모두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은의 머릿속에는 우주 미아가 된 아소를 걱정하는 친구의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그보다 잠시나마 믿었던 아소가 거짓말쟁이 살인범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아소와의 짧은 추억이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기를,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집까지 데려갔던 스스로의 행동이 어리석었던 게 아니기를, 아소가 무시무시한 범죄자가 아니기를 세은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기도를 마친 세은은 조심스레 눈을 떴다.

선로 위에 실망한 듯 주저앉아 있는 아소가 시야에 들어왔을 때, 세은은 옆에 있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오지 않은 아티스파우스, 행성을 오간다는 그 황당한 열차는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 걸까?

파란 머리 아소는 정말 행성인이 맞긴 한 걸까?

아소에게서 나오는 빛은 뭘까?

왜 사람들은 저렇게 밝은 빛을 보지 못하는 걸까?

“세은, 왜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해?”

세은이 넋을 놓고 앉아 있던 그때, 언제 왔는지 벤치 앞에 선 아소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세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티스파우스가 안 와서 실망한 거야? 내가 돌아가지 못하게 되어서? 너무 슬퍼하지 마, 세은.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네가 이렇게까지 실망하니까 내가 미안해지려고 하잖아. 헤헤. 걱정 마, 친구야. 난, 아직 아티스파우스가 안 온 것보다 네 머릿속에서 너무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걱정돼.”

아소가 할 말을 잃은 세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따뜻한 눈빛의 아소를 향해 세은이 억지 미소를 보였다.

“안세은! 여기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다고.”

멀리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준후의 목소리에 세은과 아소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세은아. 잠시만.”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준후는 아소의 눈치를 살피더니 맥없이 앉아있는 세은의 팔을 잡아 끌었다.

잡아당기는 준후와 그의 팔에 이끌려 기둥 뒤로 떠밀려가는 세은을 바라보며 아소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소가 보이지 않도록 기둥 반대편에 등을 지고 선 준후가 헐떡대며 입을 열었다.

“너 그거 알아? CCTV에 니 친구, 저 파란 머리의 모습이 찍혀 있어.”

세은은 대답 대신 침을 꼴깍 삼켰다.

“방금 방재실에서 경찰들이 CCTV 확인하는 거 보고 오는 길이거든. 그날 죽은 남자, 너한테 커피 사간 머리 긴 남자 있잖아. 그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가고 거의 바로 파란 머리 네 친구가 화장실에 들어갔어. 그 장면을 확인하고 우리 주임님이 뭐랬는 줄 알아? ‘어, 파란 머리는 프레즐 매장 알바생 친군데.’ 이랬다니까. 그 얘기 듣자마자 여기 달려온 거고. 네가 위험할지도 모르는 애랑 같이 있을까 봐.”

준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쟤, 잘 아는 애야? 어떻게 아는 친군데?”

굳은 표정의 세은이 옅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친구 이름이… 아소라고 했지?”

“응.”

“쟤랑 많이 친해? 어느 동네 사는데? 학생이야? 나이는? 우리랑 같아? 부모님이나 형제 관계는? SNS 아이디는 알지?”

아소에 대해 찾아보려는 듯 휴대폰을 들어 올리던 준후가 멍하니 눈만 깜빡이는 세은의 표정을 보고는 다시 손을 내려놓았다.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던 세은은 입을 꾹 다문 채 친구, 아소에 대해 생각했다.

 

행성에서 온 아이,

 

내 생각을 멜로디로 들을 수 있는 아이.

 

내가 만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

 

아소.

“몰라.”

고개를 떨군 세은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 괜히 쟤랑 있으면 너까지 난처해질지도 몰라. 일단 가자.”

준후가 세은의 팔을 더욱 세게 잡아 끌었다.

힘없이 준후의 손에 이끌려 가던 세은이 기둥 너머로 아소를 바라보았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세은을 기다리는 아소의 뒷모습이 보였다.

“잠깐만 준후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아소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아소는 블루를 죽일 이유가 없어.”

아소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세은이 앞서가는 준후에게 말했다.

“블루? 죽은 사람에 대해 들은 얘기가 있어? 경찰들 얘기로는 그 피해자는 신원 조회도 안 된다던데. 아소가 그래? 죽은 사람이랑 아는 사이래? 이름이 블루? 외국인이래? 자기가 안 죽였대? 너한테 얘기를 한 거야?”

준후의 질문에 다시 혼란스러워진 세은이 입을 다물었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매장으로 올라가 있어. 내가 다시 방재실 가서 상황 알아보고 갈게.”

준후는 두 발을 바닥에 꼭 붙인 세은을 더욱 세게 잡아 끌었다.

“세은!”

준후의 손에 이끌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세은이 자신을 부르는 아소의 목소리에 멈춰 섰다.

“세은, 어디 가?”

이어지는 아소의 물음에 세은이 곤란한 눈빛으로 준후를 올려보았다.

“그냥 가자. 세은아.”

앞장선 준후가 세은의 어깨를 감쌌다.

혼란스런 세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준후를 따라 걸었다.

 

정말 아소는 거짓말쟁이일까?

 

지구에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는 아소를 이대로 두고 가도 되는 걸까?

 

세은의 가슴속에 만감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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