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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은은 너무 놀라 마우스를 팽개치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소리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다잡고 있는데 예랑이 창고 문을 열고 말했다.

“안세은, 파란 머리 친구가 너 찾는데?”

“어, 어?”

예랑은 세은이 쩔쩔매는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창고 문을 활짝 열어 둔 채 주문을 받으러 가버렸다.

열린 문 사이로 카운터 너머에 서 있는 아소가 보였다.

세은은 덜덜 떨리는 다리를 애써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세은이 입을 열려는데 아소가 카운터로 와서 팔찌를 보여주며 속삭였다.

“세은, 승강장에 좀 내려가 보려고 하는데 같이 가볼래? 이 팔찌로 아티스파우스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아, 아니, 그게….”

세은이 식은땀을 흘리고 말을 못 하자 아소가 말했다.

“왜 그래? 너 더 쉬어야 하는 거 아냐? 난 혼자 가도 괜찮아.”

“아, 저….”

“세은이 친구였구나. 아까부터 벤치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더니. 가서 좀 놀다가 와. 이제 한가할 것 같으니까.”

통화를 끝낸 사장이 어느새 다가와 세은의 등을 떠밀었다.

“아니, 저…”

“괜찮아, 괜찮아. 오늘은 내가 여기 좀 지키고 있어야겠다. 세은이가 이틀 동안 엄청 고생했잖아.”

속도 모르는 사장이 싱글벙글 매장 문을 활짝 열자 세은은 어쩔 수 없이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

“그럼 조금만 있다가 들어올게요.”

“오래 있어도 괜찮다!”

세은은 떠밀리다시피 매장을 나와 아소와 함께 승강장 계단으로 향했다.

진짜 아소가 그 남자를 죽인 살인범일까.

그럼 왜 굳이 나에게 온 걸까.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어낸 걸까.

CCTV에서 본 아소의 모습이 겹치며 계단을 내려가는 세은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세은, 괜찮은 거지?”

생각을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든 세은은 마음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물었다.

“근데 뭘 할 거야? 그리구 지금 내려가도 바로 걸릴 텐데….”

승강장에는 여전히 다음 기차를 기다리거나 앉아서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괜찮아. 너 말고는 아무도 날 못 볼 거야. 이건 우리가 행성에서 여행을 나올 때 꼭 차는 거거든. 블루처럼 시계를 차기도 하고 나처럼 팔찌를 하는 사람도 있어. 우리한테서 나오는 빛을 가려주는 거야.”

팔찌를 흔들며 계단을 내려온 아소는 세은을 승강장 중앙에 남겨둔 채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이어서 팔에 걸고 있던 팔찌를 손목에서 뺐다.

팔찌를 빼자 손목의 작은 문양에서 밝은 빛이 번쩍하고 나오더니 아소의 몸을 감쌌다.

어마어마한 빛 덩어리가 된 아소가 천천히 걸음을 철로로 옮겼다.

순간 환해진 승강장에 선 세은이 넋을 잃고 철로로 내려가는 아소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걱정된 세은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휴대폰을 보거나 전광판을 바라볼 뿐 빛이 생긴 것조차 모르는 듯 평온했다.

마침내 철로에 발을 디딘 아소가 세은을 보고 윙크를 하더니 손을 흔들었다.

세은은 얼른 뛰어가 아소가 서 있는 철로를 내려다보며 섰다.

“팔찌는 괜찮은 걸 보니 어쩌면 아티스파우스가 올지도 모르겠어. 이건 크라운과 연결되는 물건이거든. 담에 또 오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인사할게, 세은. 믿어줘서 고마워. 또 만나자.”

해맑은 얼굴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아소를 바라보며 세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아소가 정말로 살인범이라면 이렇게 보내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과 아소가 살인범이라면 얼른 떠나서 자기 별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교차되며 세은은 미묘한 얼굴로 아소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꼭 아티스파우스가 왔으면 좋겠다. 아소. 잘 가.”

세은의 짧은 인사가 끝나자 아소는 천천히 철로 위에서 일곱 걸음을 걸은 후 팔찌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아소는 의식을 치르듯 눈을 살포시 감았다.

세은도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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