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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색 머리 아소는 막차가 끝나는 시간까지 틈만 나면 세은의 옆에서 재잘거렸다.

종종 프레즐이나 커피를 사러 오는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대화에 집중이 되지 않았던 세은은 묵묵히 아소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보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꾸를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했을지 모른다.

드디어 청소와 마감 정산까지 끝낸 세은이 셔터를 내리며 입을 땠다.

“그러니까 네 말은 너는 다른 별에서 아티…뭐라고?”

“아티스파우스.”

셔터 옆 벤치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아소가 대답했다.

“그래, 맞아. 아티스파우스. 그러니까 너는 지구가 아니라 다른 별에서 아티스파우스라는 기차를 타고 왔는데 지금 블루A78이라는 크라운이 연락이 안 돼서 못 가고 있다는 거지? 크라운은 티켓을 가진 사람이랑 기차를 연결해 주는 역무원 같은 거고. 원래는 철로에 티켓을 놓고 부르면 언제든 서울역에 15번 승강장이 나타나고 기차가 오는 시스템.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아?”

“응, 맞아, 맞아.”

아소가 하늘색 머리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리고 그 번쩍했던 그때 내가 본 게 15번 승강장이라는 거고. 그것도 맞아?”

“응, 정확해. 너 되게 똑똑한 지구인이구나. 이때까지 만난 지구인들은 내 말을 반도 이해하지 못했거든. 말해봤자 믿지도 않으니 이젠 입을 다물까 하던 참이었어.”

“물이랑 유리랑 꽃과 나비랑 바람 막 불던, 그 요상한 15번 승강장을 봤던 건 내가 바로 네가 말하는 트로파이기 때문이란 거잖아.”

“그렇다니까. 거긴 티켓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야. 근데 너도 나랑 같이 들어간 걸 보면 넌 트로파가 분명해. 행성에 갈 수 있도록 선택받은 지구인을 우린 트로파라고 불러.”

아소가 앉아 있는 벤치 앞을 왔다 갔다 하며 그의 말을 곱씹던 세은이 고개를 갸웃했다.

“니 말이 다 사실이라면 내가 왜? 내가 어쩌다 트로파가 된 거야?”

“나도 어떤 지구인이 트로파로 선택되는 건지는 잘 몰라. 그러니까 안세은 네가 왜 트로파가 됐는지도 난 모르지.”

“그럼 나 같은 지구인들이 행성에 가면 뭘 하는데? 다시 지구에 올 수는 있어? 막 산소통 같은 거 매고 가는 거야?”

세은이 아소 옆 벤치에 앉으며 진지하게 물었다.

“당연히 언제든 지구와 행성을 오갈 수 있어. 물론 산소통은 필요 없고. 그치만 지금은 너한테 행성에 대한 얘긴 해줄 수가 없어. 네가 트로파라면 머지않아 직접 보게 될 거고, 그렇지 않다면 행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도 넌 믿지 않을 거야. 말했듯이 직접 보지 않고는 믿는 사람 없어.”

“아…그렇지…? 매박이 아니고서는 누가 그걸 곧이 곧대로 믿겠어….”

세은은 아소의 얘기가 믿기기도 하고 믿기지 않기도 했다.

아소의 말이 사실일까?

 

진짜 내가 뭘 본 건 맞잖아?

 

유리랑 물이랑 꽃이랑 나비.

 

근데 그냥 환영 아니었어?

블루는 뭐야, 블루는 그냥 파랑이지.

 

아냐, 아냐. 아소가 내 생각을 읽었잖아.

 

그건 진짜 신기한 일이야.

 

준후가 매일 말하는 외계인이 바로 이런 건가?

 

어제 본 파란 물에는 호수의 괴물이 살고 있을까?

“잘 생각해 봐. 너도 분명 블루에게 티켓을 받았을 거야. 최근에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은 적 없었어?”

아소의 질문에 세은은 꾸역꾸역 기억을 더듬었지만 머리만 아파졌다.

“아니, 아무래도 난 아닌 것 같아. 요즘은 매일 집이랑 알바만 왔다 갔다 해서 특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었거든.”

세은이 복잡한 머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어쩌면 시스템 오류 같은 걸로 내 눈에 살짝 보였던 걸 수도 있잖아.”

“글쎄… 그럴 가능성은 없을 텐데…”

“그리고 난 다른 행성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 난 그냥 지금이 좋거든.”

황당한 상황을 더 이상 이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세은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래? 에휴… 암튼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난 블루를 찾으러 가봐야겠어. 이제 돌아가야지. 행성이 내 집이니까.”

실망한 표정의 아소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툴툴 털었다.

“근데 세은, 아까 셔터 닫을 때 네가 생각했던 그 멜로디. 그거 엄청 좋았어.”

15번 승강장.

세은이 마감을 하며 마음속으로 흥얼거렸던 멜로디의 제목은 15번 승강장이었다.

어제 본 15번 승강장의 몽환적인 이미지와 꿈속에 있는 듯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그 느낌을 표현했었다.

아소의 칭찬에 세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소!”

씁쓸한 미소를 남기고는 터벅터벅 어딘가로 향하던 아소를 세은이 불러 세웠다.

“아소, 잠깐 기다려봐.”

아소 가까이 달려간 세은이 말했다.

“같이 찾아 줄게.”

“정말?”

“응, 오늘 일 많이 도와줬잖아. 나도 널 돕고 싶어.”

아소의 얼굴에 아이 같은 미소가 번졌다.

“인상착의를 알려줘. 네가 말한 그 블루라는 크라운 말이야.”

“아, 블루? 음… 일단 머리가 길어. 안경이 조금 특이해서 너도 본다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안경에 각이 져 있는데….”

아소가 자기 얼굴 앞으로 각이 진 안경테를 그리며 설명했다.

그 순간, 세은의 머릿속에 어제의 손님과 오늘 만난 경찰이 보여준 사진이 떠올랐다.

“혹시, 정장을 입고 있니? 반짝이는 시계를 차고?”

세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어? 블루의 시계를 봤어? 그게 크라운의 신분증 같은 거야. 시계가 인상적이었다면 블루가 확실해.”

“아소. 그 사람이 나한테 티켓을 받게 될 거라고 했었어.”

“그래? 역시! 넌 트로파가 맞았어! 다행이다. 이제 행성 얘기를 해줘도 되겠어. 근데 네 티켓은 어떻게 생겼어? 지구인들은 사람마다 티켓이 다르거든.”

“아니, 그런데……”

세은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세은, 너 갑자기 얼굴이 왜 그래?”

“네가 찾는 그 사람, 오늘 새벽에 발견됐다고 했는데……”

“정말? 그럼 지금 블루는 어디에 있는 거야? 다행이다. 이제 우주 미아가 될 걱정은 없겠어.”

“아……”

들뜬 아소를 보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세은이 조심스레 아소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소, 그 사람…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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