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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이른 새벽의 서울역.

화장실 옆 청소 도구함을 연 중년의 미화원이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열린 문틈 사이로 한 남자의 커다란 발이 튕기듯 튀어나왔다.

커다란 청소차와 마대자루, 바스켓 같은 것들 사이에 구겨진 인형처럼 앉아 있는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긴 머리가 얼굴에 흩어져 채 감지 못해 희번덕거리는 안광을 가렸다.

삐딱하게 꺾인 얼굴 위로 더 삐딱하게 걸쳐진 독특한 테의 안경은 그의 얼굴을 한층 더 기괴해 보이게 만들었다.

철퍼덕.

뒷걸음을 치던 미화원은 이미 바닥에 흥건하게 퍼진 피 웅덩이에 미끄러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일자로 그어진 남자의 목에서는 그렇게 많은 피를 쏟고도 아직 조금씩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도와주세요!”

기차도 다니지 않는 깜깜한 새벽, 역사엔 미화원의 목소리만 크게 울려 퍼졌다.

 

“안세은씨, 맞으시죠?”

정오가 지난 시간, 아르바이트를 위해 서울역 내 프레즐 가게에 출근한 세은이 귀에서 이어폰을 빼기도 전에 두 명의 험상궂은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에?”

남자들은 어리둥절한 세은의 코앞에 다짜고짜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녀가 일하는 매장 근처의 CCTV를 확대한 이미지였다.

뒤로 프레즐 가게의 작은 간판이 보이는 흐릿한 사진 속에는 한 남자가 찍혀 있었다.

각 잡힌 정장을 입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걸어가는 키가 큰 남자는 직장인이라기엔 긴 머리에 특이한 각의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커피를 들고 있는 남자의 손 밑으로 시계가 유난히 반짝였다.

“아아, 뭐 가끔 오는 분이라 얼굴 정도만 아는데 무슨 일이세요? 누구시죠?”

세은의 질문에 남자 중 한 명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용산 경찰서 오민기 경위입니다. 어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근무하셨어요?”

세은은 대답하기 전 슬쩍 뒤에 서 있는 사장을 쳐다보았다.

사장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대답해 주라는 고갯짓을 했다.

“음…. 어제는 이 시간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했어요. 마감을 해야 해가지구. 아니, 근데 원래 제가 막 그렇게 근무 시간이 긴 게 아니구요, 같이 일하는 애가 갑자기 아프다고 째가지고 그랬어요. 사장님도 어제 다른 매장에 가셔서… 사장님이 연장 수당이랑 교통비도 다 챙겨주세요!”

세은은 마지막 문장을 빠르게 덧붙이고는 경찰의 눈치를 살폈다.

“아, 네. 그럼 이 분도 안세은씨가 주문받으셨겠네요? 뭐 특이한 점 없었습니까?”

세은이 노동력 착취를 당했건 말건 경찰의 관심은 사진 속 남자에게만 있는 것 같았다.

“네. 뭐 특별한 건 없었는데….”

“행동이나 말이 이상했다거나 평소와 달랐다거나 뭐 그런 거 없었어요?”

옆에 서 있던 다른 경찰도 같이 세은을 채근하기 시작했다.

“아, 그게… 그냥 좀 피곤해 보이긴 했었는데……”

[당신, 오늘 티켓을 받겠네요.]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정장을 입은 손님.

출장이 잦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 남자.

세은은 그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

어젯밤.

“당신, 오늘 티켓을 받겠네요.”

“네?”

세은이 일하는 프레즐 가게는 서울역 14번 승강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조용한 역사에는 막차의 출발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크게 울리고 있었다.

[10시 30분, 부산으로 가는 KTX 231번 열차를 이용할 고객께서는 타는 곳 14번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죄송해요. 잘 못 들었는데 뭐라고 하셨어요?”

“티켓을 받는다고 떠날 것 같진 않지만, 뭐 그런 지구인들도 있긴 하죠.”

“네? 무슨 티켓이요? 지금 방송 나오는 저게 막차예요.”

어리둥절한 얼굴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건네는 세은에게서 시선을 거둔 남자는 평소와 같이 조용히 지폐 몇 장을 놓더니 커피를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뭐야, 볼 때마다 이상한 사람이야. 오늘따라 늦게 와서는 마감도 다 끝났는데 귀찮게시리. 티켓은 뭔 티켓이야. 이 시간에.”

세은이 가는 남자의 뒤통수에 대고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준후가 가게로 들어왔다.

“야, 안세은. 마감 다 했냐? 쓰레기는 이것뿐이야?”

“어어, 내가 중간에 한 번 버렸거든. 그것만 버리면 돼. 근데 근무 시간 끝난 지가 언젠데 옷 안 갈아 입었네, 공익?”

“어허, 공익 아니고 사회복무요원이라니까. 글구 아까 ‘매박’ 쫓아낸다고 부대끼고 땀나서 내 옷 입기 싫어. 그냥 이거 입고 갈 거야. 근데 누구야?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했냐? 이쁜 알바생~ 전화번호라도 달래?”

세은과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인 준후는 서울역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주 임무는 노숙자 관리다.

말이 좋아 관리지 자는 노숙자, 구걸하는 노숙자를 역 밖으로 내쫓는 게 하루 일과인 준후가 말하는 ‘매박’은 서울역 후문에 상주하고 있는 노숙자 중 한 명이었다.

매일 준후를 붙잡고 호수 속 괴물이나 나사에서 숨겨둔 외계인 시체 얘기를 하는 ‘매드 박사’, 줄여서 매박은 음모론을 좋아하는 준후와 가끔씩은 말이 잘 통하기도 하는 아저씨였다.

“어쩌다 한 번씩 오는 사람인데 생전 말 한마디 안 하더니 오늘따라 이상한 소리를 하네. 암튼 나 머신 청소 한 번 더 해야 하니까 너 그것 좀 버리고 와. 근데 매박은 왜 쫓아낸 거야? 어젠 잘 놀더니.”

“주임님이 하도 뭐라고 하셔서 오늘은 나갔다가 내일 오시라고 했는데 안 나간다고 버티잖아. 근데 머신 청소 아직 안 했냐? 그럼 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내려놔 줘! 이거 얼른 버리고 올게!”

준후가 쓰레기봉투를 번쩍 들고 나가며 말했다.

“알겠다. 알겠어.”

세은은 투덜거리며 제빙기에서 남은 얼음을 꺼내 준후의 커피를 만들고는 다시 머신 청소를 시작했다.

남은 세제와 뜨거운 물을 배수구에 붓고 가게 밖으로 목을 쭉 빼보았지만 준후는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매장의 불을 끈 세은은 가게 밖 난간에 기대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퇴근합니다~ 싸장님!]

[수고. 금고에서 3만 원 꺼내 가라. 교통비다.]

“아싸!”

다시 매장으로 몸을 틀던 세은의 시선이 14번 승강장에 멈췄다.

승강장에는 짧은 하늘색 머리에 하얀 코트를 입은 사람이 우두커니 서서 철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저 사람?”

신기한 머리색에 정신이 팔린 세은은 기차가 끊겼다는 것도 잊고 14번 승강장을 내려보았다.

여전히 준후는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는 거야.’

휴대폰 시계를 확인한 세은이 다시 승강장으로 눈을 돌리자 하늘색 머리의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 갔지?’

세은의 발걸음이 자기도 모르게 승강장에 이어진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반쯤 내려가자 다시 하늘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 사람은 승강장을 내려와 기차가 다니는 철로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기, 저기요! 거기 위험해요!”

철로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한 세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저기요! 거기 위험하다니까, 올라와요!”

세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하늘색 사람은 태연하게 몸을 숙여 철로 위에 뭔가를 놓고 있었다.

“야! 위험하다고!”

세은의 손에 그 사람이 잡힐 듯 가까이 간 그 순간, 밝은 빛이 번쩍하고 눈앞에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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